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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225][삼라만상] 새 학년, 다시 초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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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조회 148회 작성일 26-03-0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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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이 지나고 바람 끝이 조금씩 부드러워지면, 병원 창밖으로도 봄이 온다는 신호가 느껴진다.

아직은 코끝이 시린 날씨지만 교복 위에 걸친 얇은 겉옷, 새 운동화의 반짝임, 그리고 어딘가 들뜬 표정 속에서 우리는 새 학기의 시작을 본다.

계절은 매년 비슷하게 찾아오지만, 그 봄을 맞는 사람의 마음은 해마다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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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나 역시 봄이면 늘 긴장과 설렘 사이에 서 있었다.

새 교실, 새 담임선생님, 낯선 자리 배치표. 혹시 친구가 없으면 어쩌나, 성적은 잘 나올까, 괜히 앞에 나섰다가 실수하진 않을까.

어린 마음에도 ‘새 출발’은 기대만큼 부담이 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불안은 성장의 다른 이름이었다. 어색함을 견디며 한 걸음 내딛는 법을, 타인과 부딪히며 나를 알아가는 법을 그때 배웠다.

의사가 된 뒤로도 봄은 여전히 특별하다. 특히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이면 외래에는 아이들과 부모들의 발걸음이 잦아진다.

긴장 탓에 복통을 호소하는 학생, 친구 관계의 어려움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청소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면역력이 떨어진 듯 감기를 달고 오는 아이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몸은 솔직하다. 마음이 흔들리면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낸다.

의학적으로는 이를 ‘스트레스 반응’이라 설명한다. 자율신경이 예민해지고, 소화 기능이 떨어지며, 수면의 질이 낮아진다.

하지만 진료실에서 아이들의 눈을 마주하다 보면, 그것은 단순한 생리적 현상이 아니라 “잘해내고 싶다”는 간절함의 다른 표현처럼 느껴진다.

성적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믿는 힘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너무 늦게 깨닫는다.

새 학년의 마음가짐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모두가 1등이 될 수는 없지만, 모두가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나아질 수는 있다.

의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원칙도 ‘지속성’이다. 무리한 치료보다 꾸준한 관리가 몸을 살린다.

급격한 다이어트보다 규칙적인 식사와 수면이 건강을 지키듯, 학업과 인간관계 역시 하루하루의 성실함이 결국 큰 차이를 만든다.

봄은 자연이 다시 시작을 허락하는 계절이다. 가지 끝이 앙상해 보여도 속에서는 이미 물이 오르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준비의 시간이 결국 꽃을 피운다. 혹여 새 학기가 두렵고 벅차더라도, 지금의 불안이 곧 성장의 밑거름임을 믿었으면 한다.

실패 또한 면역과 같다. 한 번의 상처가 다음 상처를 이겨낼 힘을 길러준다.

의사로서 아이들의 건강을 돌보지만,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는 그들의 ‘시작’을 응원하고 싶다.

성적이 아니라 태도를, 경쟁이 아니라 균형을, 속도가 아니라 방향을 먼저 생각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그 말은 아이들뿐 아니라 우리 어른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박완서 작가의 수필집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는 어린 시절의 설렘과 두려움을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개인의 성장이 구체적인 묘사로 쓰여 있다.

싱아는 작가의 어린 시절 시골 마을에서 보았던 들풀이다.

특별히 귀한 것도, 화려한 꽃은 아니지만 자연스레 작가의 어린 시절의 자연과 생활 속에서 스며 있던 존재인데 전쟁 직전의 평화로움을 나타나는 상징이기도 하다.

우리 병원의 행정책임을 맡고 있는 한 직원은 5년 전 유기동물 입양단체를 통해 말티즈, ‘수리’를 입양했는데 벌써 5년째 수리를 통해 인생에서 가장 큰 행복을 퇴근할 때마다 느낀다고 한다.

코로나 때는 화상회의할 때 갑자기 수리가 화면에 나타나서 같이 즐거웠던 에피소드도 있었는데, 작년에 10살이 넘은 또 다른 구조견 치와와 ‘양갱’을 임시보호 하면서 둘이 된 행복의 100을 50과 50으로 나누는 삶이 아닌 200으로 만드는 기적을 매일 경험한다고 말했다.

사람은 이토록 감성적이고 자신이 행복을 느끼는 수치의 높고 낮음이 다르다.

새 학년의 봄. 우리 모두에게 또 하나의 새 출발이다.

하얀 가운을 처음 입던 날의 긴장과 다짐을 떠올리며, 나 또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본다.

봄은 해마다 오지만, 마음가짐은 매번 새로워야 한다.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이 계절에, 우리는 다시 배우고 다시 자라난다.

백승호 의료법인 성수의료재단(인천백병원/비에스종합병원) 이사장

출처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https://www.joongboo.com)